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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무형문화유산

정월대보름 지신밟기: 마을을 지키는 전통 의식

by hnkm1093 2025. 7. 30.

1. 지신밟기의 유래와 의미 – 대지의 신을 달래는 정월대보름 풍습

정월대보름은 음력 1월 15일로, 한 해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우리 고유의 세시풍속이 집중된 시기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지역적이고 공동체적인 의례로 손꼽히는 것이 바로 ‘지신밟기’이다. 지신밟기란 ‘땅의 신(地神)을 밟는다’는 의미로, 집안의 지신과 마을의 터를 다스리는 신령에게 제를 올리고 복을 비는 행위다. 주로 마을의 청년들이 농악대와 함께 집집마다 방문하여 지신을 밟고 잡귀를 물리치며 액운을 막고 복을 부른다.

이 풍습의 기원은 농경 사회에서 자연을 신성시하며 땅과 인간이 공존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시대에도 이미 정월대보름에는 여러 형태의 지신밟기 의식이 존재했으며, 각 지방마다 이름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집터, 마을,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를 ‘마당밟기’ 또는 ‘고사밟기’라고 부르며, 집안에 잡귀가 들지 못하도록 북과 장구, 꽹과리 소리로 귀신을 쫓아내는 주술적 의미도 함께 갖는다.

정월대보름 지신밟기: 마을을 지키는 전통 의식

2. 지신밟기의 절차와 구성 – 풍물패의 행진과 의례의 상징성

지신밟기는 단순한 행사가 아니다. 이 풍속은 철저한 절차와 상징적인 구성으로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풍물패가 구성되어 앞에는 **상쇠(리더 격의 꽹과리 연주자)**가 위치하고, 이어서 북, 장구, 징 등의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들이 뒤따른다. 이들은 마을 입구나 마을 수호신당 앞에서 먼저 고사를 지내고, 이어 집집마다 방문하며 굿을 벌이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집주인은 풍물패를 반기며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그 대가로 풍물패는 집안의 터를 밟으며 복을 부르는 길한 소리를 울린다. 이 과정은 마을 공동체가 상호 협력하며 복을 나누는 구조로, 단순한 퍼포먼스를 넘어서는 공동체적 의미를 지닌다. 특히 집주인이 문 앞에 쌀, 술, 고기 등을 차려놓는 것은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서 집안의 정성과 기대를 표현하는 행위로 해석된다.

이 의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잡귀를 몰아내는 장단’이다. 강한 북소리와 꽹과리 소리는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부정한 기운을 몰아내고 정기를 불러오는 의례적 상징물로 기능한다. 이러한 구성은 단지 음악적 감흥을 넘어, 마을 전체의 정신적 위안을 제공하는 종합 예술로서의 기능을 가진다.

 

3. 지역별 지신밟기 전통 – 고유의 방식과 전승의 다양성

지신밟기는 전국적으로 널리 퍼져 있었으나, 지역에 따라 독특한 방식으로 발전했다. 예를 들어, 경상도 지역에서는 풍물패 외에 탈춤이나 소리판이 동반되기도 하며, 강원도에서는 산신제를 겸하는 경우가 많다. 전라도 일부 지역에서는 지신밟기를 마치 퍼레이드 형식으로 길게 이어가며 마을 전체를 도는 형식으로 진행한다. 각 지역의 환경과 역사, 신앙에 따라 지신의 정체와 밟는 방법, 음악의 리듬, 복을 비는 내용이 다르게 구성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지역마다 지신밟기에 등장하는 인물도 다르다. 어떤 곳에서는 장승을 세워 그 앞에서 제를 올리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무당이 함께하여 굿의 형태로 진행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지신밟기를 마을 축제 또는 문화유산 체험 프로그램으로 전환해 현대적 의미를 부여하는 시도도 활발하다. 이는 전통의 계승뿐 아니라, 지역 주민의 정체성과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4. 지신밟기의 현대적 가치 – 무형문화재로서의 보존과 활용

지신밟기는 현재 국가 또는 지방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지역도 있으며, 전통문화 계승의 중요한 자산으로 여겨진다. 특히, 빠르게 도시화된 현대 사회에서 잊혀진 마을 공동체의 의미를 다시금 상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단순히 옛것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적 삶과 공동체 정신을 연결하는 다리로서 지신밟기의 문화적 의미는 더욱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청소년 교육과 문화 체험 프로그램에서 지신밟기 체험 교육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또한 전통 음악 교육과 연계되어 풍물놀이, 민속무용, 민속극과 결합한 공연 형태로 발전하기도 한다. 마을의 유대감과 세대 간 교류가 단절된 시대에, 지신밟기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따뜻한 연결의 상징이자 살아있는 무형의 자산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지신밟기의 보존은 단순히 과거의 문화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는 문화적 나침반이 된다. 전통을 이어가되,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지신밟기는 앞으로도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무형문화유산의 축으로 기능할 것이다.